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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유작전

  • 1992-04-30 ~ 1992-05-24
  • 과천 제2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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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이상욱 유작전

고 이상욱 화백은 독보적인 표현방식을 통해서 한국추상미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만상(萬象)은 하나로 귀일한다』는 동양사상에 한때 심취한 바 있었던 이화백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공간을 구성하는 긴장된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한국추상화단에서 유니크한 경지로 평가받은 바 있으며, 특히 판화매체를 통한 표현기법의 독특한 개발은 그의 숨은 업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함경도 함흥태생인 그는 제2차대전 말기의 어려운 시절에 일본의 가와바다 화숙에서 기초과정을 연수한 바 있으나, 악화되는 전세(전세)로 귀국하게 된다. 그 후 조국의 분단으로 남하하며, 여러 역경을 극복하면서 미술을 향한 초지를 일관하게 된다.

사변후인, 56년에 조직된 신조형파에 가담하여 추상미술운동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신상회('64), 창조미술협회등의 그룹과 연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이 발휘되는건 판화에서이다.

『한국판화협회』('58)와 현대판화가협회』('60)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유강렬, 최영림, 이항성등과 함께 한국판화계의 제1세대를 형성하게 된다.

한편, 미술교육분야에 있어서도 남다른 열의를 보였던 그는 국제미술교육회의의 한국대표로 참석한 바 있으며, 미술을 통한 인간교육을 위해 대신, 휘문 등의 명문고교에서 많은 학생들을 계몽한 바 있다. 그리고 전문지도자의 입장에 선 홍익대, 상명여사대, 고려대등에서 후배를 지도한 바 있으며, 평생동안 6회의 개인전을 갖는다.


만년의 그는 미국 등지에서 여러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일회성(일회성)의 칼리그라픽한 필치(필치)로 되는 화면은 외국의 기호가들에게 찬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찰라적인 불꽃의 광휘를 연상시키는 그의 화면에서, 폭발하는 생명력의 긴장감을 느낀다는게 그들의 평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화백이 내장기관의 악화로 '86년 일차 수술을 받게 되며, '88년 4월 서울대병원에서 영면하게 된다. 그러나 병석의 그는 최후의 개인전을 결심하며,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으로 나와 미술가로서의 최후를 장식한다는 일화를 남긴다.


이번 회고전은 이러한 이상욱 화백의 평생의 생업을 회고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가져본다는 뜻에서 마련되었음을 밝힌다.

  • 작가
    이상욱
  • 작품수
    186점

전시인쇄물

이상욱 유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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